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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후쿠시마’ 인터뷰 아카이브

‘힘내자 후쿠시마’의 ‘후쿠시마에 사는 외국출신자들의 목소리’와 ‘후쿠시마에 사는 외국출신자들의 투고’에서 소개한 기사를 모았습니다.
 ※등장하는 분의 이름과 주소는 취재 당시의 것입니다.

일본어/にほんご   영어/English    중국어/中文
타갈로그어/Tagalog   포르투칼어/Português    한국어


No.84  고토우 캐서린씨 (지진 당시에는 후쿠시마 거주, 현재는 오사카시 거주, 필리핀 출신/2015년 2월 취재)


 동일본 대지진 직후, 제 휴대폰으로 후쿠시마현에 거주하는 필리핀 출신자들로부터 연이은 문의 전화가 있었고, 저는 피난을 위한 버스나 항공기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이후 필리핀 대사관으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었고, 당시 같은 필리핀 출신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14 년 봄에 후쿠시마시를 떠나 현재는 오사카시 회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타갈로그어 통역과 생활 상담에 대응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교와 자치제에서 공연을 의뢰 받기도 해, 후쿠시마시에서 동일본대지진을 몸소 경험한 자로서, 앞으로도 계속 정보 발신을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No.83  테츠카 레이코씨 (후쿠시마시 거주, 중국 출신/2015년 2월 취재)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후쿠시마를 위해 뭔가 공헌할 수 없을까라는 강한 바램이 생기게 되었고, 지진이 일어난지 약 1 년 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된 업무는 통역과 번역이지만, 중국으로 진출한 기업을 지원하고 후쿠시마현에 재주하는 외국 출신자들을 위한 사회참가 서포트 등도 하며 조금씩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직접‘후쿠시마 부흥사업’ 이라는 이름을 붙여, 후쿠시마현 관광 위탁사업과 중국인 관광객 유치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전진적인 활동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No.82  아리손 람씨 (후쿠시마시 거주 오스트레일리아 출신/2015년 11월 취재)


 2011년 여름부터 후쿠시마시 ALT(외국어 지도 조수)로 시내 초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동일본 대지진 직후였고 이문화 생활에 홈시크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느긋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후쿠시마의 한가로운 분위기가 잘 맞아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저는 주위 사람들보다 자연재해의 위기관리 의식이 적은 편이라 지난 호우 피난정보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 유사시에는 정확한 정보를 얻어 차분하게 행동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No.81  무다실 바키트씨 (후쿠시마시 거주 수단출신/2015년 11월 취재)


 2015년 9월에 일본에 왔고, 현재 후쿠시마 현립의과대학에서 연수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생활에 큰 불안은 없으며 매일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직장에서는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하기 때문에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일본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약 10년은 일본에서의 근무가 계속되기 때문에 지역 분들과의 교류도 가능하도록 매주 일본어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No.80  리 리앙씨 (코오리야마시 거주 중국출신/2015년 11월 취재)


 2015년 3월 ‘중일문화 교류회 행복(코우후쿠)’을 설립했습니다. 코오리야마 시내에 거주하는 중국출신자들과 자녀들, 일본과 중국 문화교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회원입니다. 중국출신자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거나 요가와 중국무용 강좌를 개최하며 상호 이해를 돈독히 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 일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당시나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외국출신자들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려심을 가지고 함께 협력함으로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지역 만들기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No.79  고토우 레이카씨 (후쿠시마시・중국출신/2015년 6월 취재)


 이전, 일본인과 외국인이 어떻게 공생해 나가야 하나에 대해 강사로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살아간다면 일본어 습득은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나 일본인 친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아이의 성장과 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고 또한 언어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저는 정보수집에 소질이 없어 지진 후에는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Wechat 나 LINE 등 SNS 를 이용하여 중국출신 친구와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게 되어 생활 속의 작은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있습니다.


No.78  파이살 브디 알만샤씨 (후쿠시마시・인도네시아 출신/2015년 6월 취재)


 2012 년 11 월에 기능실습생으로 후쿠시마에 왔습니다. 올 가을까지 약 3 년간 건설기계시공과 용접 등의 기술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2004 년에 발생한 수마트라 지진을 경험하고 당시 자신과 가족, 다니던 고교에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대규모의 재해가 갑자기 닥치는 공포를 알게 되어 항상 방재의식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후쿠시마에 살면서 몇번이나 큰 지진을 만났지만 그 때마다 피난장소는 어디인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냉정하게 판단하려고 합니다. 또한 정보를 정확히 얻을 수 있도록 재해에 관한 일본어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No.77  사사키 마리셀씨 (후쿠시마시・ 필리핀 출신/2015년 6월 취재)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초등학생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 각자 생활 시간대가 다르고 제 자신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분주합니다. 지진 후 일본에 왔기 때문에 동일본 대지진이나 원전사고 당시의 어려움은 모르지만 아이들의 건강에 관한 것은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휴일은 외국출신자가 모이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려고 합니다. 같은 외국 출신 분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일본에서의 생활에 참고가 되는 것이 많습니다.


No.76  스즈키 미라솔씨(이와키시 ・필리핀출신/2015년 2월 취재)


 동일본 대지진 직후에는 시댁인 코오리야마시와 언니가 살고 있는 와카야마에 일시 피난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이와키시에 살고 있습니다. 2 년 전 차남이 태어나 매일 육아로 힘들지만 지금은 영어회화교실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동일본 대진진 이후 일시 피난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거나 새로운 일이나 결혼으로 온 사람도 있어 현재 이와키시에는 많은 필리핀출신자가 살고 있습니다. 필리핀출신자 간에도 지역이나 세대, 생활환경 등으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어 모두가 함께 협력해 나가고 싶습니다.


No.75  고 케츠씨(후쿠시마시 거주 중국 내몽골 자치구 출신/2015년 2월 취재)


 2010년에 일본에 와서 도내의 일본어학교와 대학에 다녔고 작년 봄에 후쿠시마에 편입했습니다. 후쿠시마대학을 선택한 것은 배우고자 함은 물론 지진 직후 블런티어로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후쿠시마의 여유로움이 내몽골의 고향과 닮은 점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후쿠시마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제미활동에서는 홍보와 잡지 만들기를 맡으면서 현내 기업인들과 교류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런 인연을 이어서 졸업 후에는 후쿠시마현 내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No.74  타파 비니타씨(후쿠시마시 거주 네팔 출신/2015년 2월 취재)


 작년 봄부터 후쿠시마 일본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1년간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소우마와 이와키에 가서 처음으로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바다는 영상으로 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와 기쁨에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 후쿠시마현의 바다도 몇 미터나 되는 높이의 츠나미가 왔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방재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봄부터 상급클래스로 올라가 일본어 공부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 예상되지만 졸업 후 유학생으로서 일본 대학에 진학해 장래에는 관광 관계의 일을 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할 것입니다.


No.73  카루카・낸시・사치씨(아이즈와카마츠시 거주 브라질출신/2014년 11월 취재)


 제 아버지는 후타바마치 출신이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모토미야시(구 모토미아마치) 출신입니다.어릴 때부터 브라질의 후쿠시마현민회 활동에 참가했기 때문에 동일본대지진은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현재는 금년부터 재개한 후쿠시마 현비유학생 자격으로 아이즈대학 단기대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유학으로 후쿠시마현이라는 곳에서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후쿠시마의 현 상황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갖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No.72  사이브양 오도바얄씨 (후쿠시마시 거주 몽골 출신/2014년 11월 취재)


 지진 직후인 2011 년 봄 후쿠시마대학에 유학와서 내년 봄에는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대학에서 배운 기업경영 외에도 기업가 육성프로그램과 아메리카에서의 인턴십에 참가하는 등 앞으로의 비지니스 전개를 위한 노하우를 배웠습니다.이전 「전국학생영어 프레젠테이션 콘테스트」에 참가해 「지진부흥을 가속시키자!」라는 테마로 스피치 했습니다. 차세대에 필요한 것은 강한 인재 육성이라고 생각하며 제 자신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No.71  사와카미 장씨 (코오리야마시 거주 베트남 출신/2014년 11월 취재)


 2007년에 일본에 와서 가족과 코오리야마시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때 가게가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 후 재건되어 단골손님들도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가게에는 베트남 출신 외에도 일본어 이해가 힘든 외국인 스텝도 있기 때문에 항상 모두가 하나되어 서로를 도와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후쿠시마현도 베트남 출신 기술실습생이나 연수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일본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고민 상담을 받거나 하면서 가능한 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No.70  바즈 모하마드씨(후쿠시마시 거주 파키스탄출신/2014년 10월 취재)


 후쿠시마에 산 지 약 12 년 되었습니다. 중고차 수출업에 종사하고 있고 최근엔 카오디오, 네비게이션 등의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일이 바빠서 좀처럼 쉴 여유가 없지만 현재 가족모두 평온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인생은 곤란한 일이 많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주변 친구들이 가족처럼 도와 준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No.69  에마 윌슨(카와마타마치 거주 영국출신/2014년 10월 취재)


 2010 년 9 월부터 히로시마시 대학에서 1 년간 유학하고 봄방학 기간에 도쿄에 놀러갔는데, 그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라는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의 충격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올 8 월부터 카와마타마치의 ALT(외국어지도 조수)로서 카와마타마치 초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지만 ALT 일을 통해 영어와는 다른 일본어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장래에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No.68  윌리엄 파트릭 팀스 (야마츠리마치 거주 영국출신/2014년 10월 취재)


 2013 년 봄에 일본에 와서 현재 야마츠리마치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와 생활습관, 후쿠시마현에 대해 미리 알고 일본에 왔지만 직접 생활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아 그때마다 신선한 기분입니다. 친구의 Facebook 을 통해 후쿠시마현 국제교류협회 「원・월드 프로젝트」를 알고 멤버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고 여러 생각이나 의견이 있어 재밌는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후쿠시마의 매력을 소개하는 영상 제작을 하고 있는데 완성작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No.67  필랴킷스턴 레크릿트씨(후쿠시마시 거주 태국출신/2014년 5월 취재)


 일본에서 살게 된지 약 1 년반 후인 2011 년 4 월 후쿠시마시 고교에 진학했습니다.일본생활에 익숙해지거나 일본어 습득과 학교 수업에 쫒아가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만, 좋은 친구들 덕분에 충실히 3 년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올 4 월 취업해 새로운 환경에서 매일 분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괴롭거나 힘들일이 닥치면 도망가기에 급했지만 동일본대지진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통해 무슨 일이든 극복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와 같은 입장의 아이들과 제 경험을 토대로 좋은 어드바이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No.66  미유 마리아씨(후쿠시마시 거주 필리핀출신/2014년 5월 취재)


 올 봄부터 후쿠시마현 국제교류협회 타갈로그어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 년이상 후쿠시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모국에 돌아가면「외국인」이 된 기분으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국인 필리핀 사람들을 상담할 때는 상대방 입장에 선 성실하고 친밀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지진재해 직후에는 많은 일들에 신경이 민감한 상태였지만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기분을 잘 전환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과 가사, 육아로 바쁜 일상이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게 되어 바쁜 일상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No.65  원 창섭씨(후쿠시마 거주 한국출신/2014년 5월 취재)


 고교생이었던 2006 년 여름, 1 개월간 후쿠시마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체험했습니다. 홈스테이 기간 중 신세를 진 가족들과 알게 된 사람들이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신 덕분에 귀국 후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 후 우연히도 진학하게 된 대학이 후쿠시마대학이라 아주 기뻤습니다.군입대를 위해 2 년간 휴학하고 올 4 월 대학에 복학했습니다. 일본생활을 재개하고 언어와 문화, 습성 등을 더욱 알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미숙함을 깨닫게 되었고 끊임없는 노력의 중요성과 향상심이 생겼습니다.


No.64  콜라손 라손 노리코씨(후쿠시마시 거주. 필리핀 출신 여성/2014년 5월 취재)


 제가 일본에 왔을 당시에는 외국인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언어나 문화 차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등으로 힘들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생활하는 필리핀 친구들에게 자주 상담을 의뢰 받기도 합니다만 그럴 때엔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좌우명은「힘들다」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항상 웃는 얼굴로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동일본 대지진은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지만 매일아침 기도를 하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멋지게 보낼까를 생각하며 부정적인 것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No.63  와시오 레이씨(코오리야마시 주재・지진재해 당시 카와우치 마을 주재 중국출신 여성/2014년 3월 취재)

 카와우치 마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피난생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코오리야마시로 이전해 지진 전까지 함께 살고 있었던 남편의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의 단신부임으로 현재는 어린 아이들 3명과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되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풀타임으로 일을 재개하고 싶지만 생활 발란스가 잘 안 잡혀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코오리야마시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나 많은 같은 고향 친구들과 사귀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지진재해 경험을 통해 서로를 도우는 것과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도와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No.62  바토에루데네 람양진씨(후쿠시마시 주재 몽골출신 여성/2014년 2월 취재)

 동일본 대지진재해 직후인 2011년 봄 후쿠시마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해 같은 학부의 유학생은 7명밖에 없어서 처음엔 많은 걱정과 불안의 유학생활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몽골의 같은 고교 출신 선배가 있어서 항상 가족과 같이 대해 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또한 지진재해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분들과 만나면서 후쿠시마에서의 유학생활은 자신의 인생에 아주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쿠시마현 국제교류협회 사업에 참가해 몽골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통해 모국인 몽골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나아가 정확한 정보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1년간의 유학생활은 후쿠시마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의식하며 뜻 있게 지내고 싶습니다.


No.61  탄노 쥴리에씨(이와키시 주재 필리핀출신 여성/2014년 3월 취재)

 동일본 대지진재해 이후 이와키시내에 살던 다수의 필리핀 출신자들 간의 작은 그룹을 하나로 묶어「이와키 필리핀 커뮤니티」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약 50명으로 매월 1번 모여 교류하고 있습니다. 생활이나 아이들에 관한 것, 언어 문제 등 서로의 고민을 상담하는 일이 많아 서로간의 정보교환이나 공유도 가능합니다.최근에는 이와키시의 공민관에서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강좌나 지식자들을 초청한 워크숍 개최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 1명1명의 힘은 작지만 서로가 모여 협력하면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No.57  고노 게이코 (후쿠시마시 거주 중국출신 여성/2013년 8월 취재)

 제가 매일 의식하는 것은 ‘평상심을 갖고 살자’입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잠깐 동안 냉정함을 잃고, 사소한 일에도 어린 딸아이의 성장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었습니다. 다행히도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협력을 얻었고, 나쁜 일은 계속되지 않으며,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로다방면으로 사물을 보고 상황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전문제 등 후쿠시마는 아직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정보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고, 그 안에서 후쿠시마의 부흥을 위한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No.56  혼다 나오키 (후쿠시마시 거주 필리핀출신 남성/2013년 8월 취재)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기 열흘 전, 저희 집에 화재가 나는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잠시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으며, 또한 지진의 영향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2 달 늦어지게 되는 등 2011 년도에는 괴로웠던 일 뿐 입니다. 지금도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일뿐 입니다만, 요리사가 되기 위한 수행을 열심히 한 결과 올해 여름, 후쿠시마 시내에 음식점을 열게 될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힘들지만 지금은 매우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게에 많은 손님들이 오기를 바랍니다. 요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나중에는 지점을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No.55  류 호 (후쿠시마시 거주 중국출신 여성/2013년 7월 취재)

 학교가 봄 방학이라 잠깐 집에 와 있었을 때에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했습니다. 니가타의 중국총영사관에서 피난을 하라는 연락이 있었지만, 남편과 시댁을 남겨두고 저 혼자만 피난하기는 싫었기에 중국으로 귀국하지는 않았습니다. 방사능의 공포보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저에게는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약 10 년전에 일본에 왔었을 때에는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일본에서의 생활에 좀처럼 익숙해 지지 못하고 힘들었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진을 경험한 덕분에 제 자신이 전보다 강해졌다고 생각됩니다. 또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던 점을 고쳐서 주위의 사람이나 누군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후쿠시마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하는 ‘후쿠시마 GLOBAL YOUTH COLLEGE2013’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No.54  시가 레이씨 (아이즈 와카마쯔시 거주, 진재 당시는 오쿠마쵸에 거주 중국출신 여성/2013년 5월 취재)

 지진이 일어났던 그 당시에는 오쿠마쵸에 살았기 때문에 속히 피난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현재는 아이즈 와카마츠 시내의 가설주택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길고 긴 가설주택에서의 생활은 지진 직후와는 또 다른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으며, 거주자간의 소통에 대한 어려움으로 고민 할 때도 있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과 서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제 자신이 필요 되는 기회를 특히 소중히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동사무소에서 가설주택 가구별로 타블렛의 지급이 있어 동에서부터의 연락사항의 확인이나 인터넷, TV 전화의 이용, 주민들이 서로 SNS 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스마트 폰을 구입하였고 아직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정보수집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No.53  카와무라 에미 (후쿠시마시 거주 미국 출신 여성/2013년 5월 취재)

 지진 직후, 시댁이 있는 야마가타현 사카타시에 두 아들과 피난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건강을 제일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지진이 있으며, 방사능에 대하여 불안하기도 했지만 가족이 다같이 사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하여 올해 3 월에 후쿠시마시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도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7 년 전, 당시 살고 있던 지바현 나리타시에서 후쿠시마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후쿠시마는 녹음이 푸르며, 음식도 맛있어서 살기에 좋은 곳일 거야’ 라고 들어왔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그 인식이 180 도로 바뀌어버렸지만, 지금까지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피난생활에서 다시 돌아 온 지금 저의 생활이야말로 안전하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후쿠시마에 또 다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No.52  아담 벨린 (후쿠시마시 거주, 캐나다 출신 남성/2013년 5월 취재)

 작년 여름부터 후쿠시마시에서 ALT(외국어지도조수)로써 근무하고 있습니다. 근무 하기 전 후쿠시마에서 일하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1 년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저는 후쿠시마에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하여 망설이거나 불안감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후쿠시마에 오고 나서 진재와 원전사고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피해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나 역경에 강인하게 대처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후쿠시마 현민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ALTB85C 써의 임기는 내년 여름까지이지만 남은 기간 동안에 후쿠시마현에서 귀중한 경험을 많이 쌓아가고 싶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물론이고 현내의 관광명소를 될 수 있으면 많이 방문하고 싶고,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만끽하고 싶습니다.



No.50  챠미라・카루나티레이크씨 (아이즈와카마츠시・스리랑카출신/2013년 2월 취재)

 제가 살고 있는 아이즈 지역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연락 수단이 잠시 중단되어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지진 후 대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직접 츠나미 피해의 비극을 보았고 잔혹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헤쳐나가는 일본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인의 강인함과 성실함에 존경을 느꼈습니다.
 지진을 겪은 후 방사선 안전 레벨과 현 후쿠시마현내 레벨을 비교하거나 후쿠시마현에 살면서 건강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등의 정확한 정보를 알아보며 원전과 방사선에 대해 더욱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생활면에서의 불안은 없어졌고 스스로 상황 판단을 잘 하고 있습니다.
 아이즈는 제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현은 꼭 부흥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No.48  쟈오・유이하오씨 (후쿠시마시・중국 출신/2013년 1월 취재)

 2011년 5월에 후쿠시마대학 유학이 결정되었을 때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여 가족과 친구들이 후쿠시마 유학을 반대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는 마음도 이해하고 원전 문제 등의 불안도 있었지만 유학 계획을 무산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후쿠시마 유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해의 중국 유학생은 저 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후쿠시마의 좋은 점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는 중국 도시 출신이라서 자연이 풍부하고 공기가 깨끗한 환경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매일 아침 눈으로 하얗게 덮인 아즈마코후지의 풍경을 볼 수 있고 그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정화되는 듯 합니다. 지진으로 그 아름다움이 뺏긴 상황은 슬프지만 좋은 공기와 경치, 맛있는 음식 등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No.46  쟈렛・로쟈즈씨 (스카가와시・아메리카 출신/ 2012년 12월 취재)

 카가미이시마치 ALT(외국어 지도조수)를 하게 된지 7년이 되었습니다. 지진 당시에는 초등학교에 있었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피난시켰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무너지진 않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전기도 물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집이 붕괴된 친구들을 부르고 수도와 전기가 끊긴 친구들에게는 목욕을 제공했습니다.지진 직후,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일시 피난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친절하고 따듯한 사람들, 자연과 온천, 많은 스키장이 있는 후쿠시마가 좋아서 많은 친구들이 있는 이 장소를 떠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일단 귀국한 친구도 지금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근처의 신사 축제와 마을 이벤트에서 신여메기, 캠프 등에도 참가하며 지역 주민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역 어린이들과 같이 전통 북을 배우거나 카가미마치 소프트볼 팀에도 소속되어 있습니다. 지진 전보다 더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No.45  이노마타 카즈미(아이즈미사토초 거주 베트남출신 여성)

 저는 아이즈와카마쓰 시내에서 베트남요리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일본에 온 뒤로 30년이상 아이즈에 살고 있어 이 지역에 사는 베트남인들의 고민을 상담해 줄 때가 많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직후부터 이재민들에게 베트남요리를 만들어 제공했는데 그 인연으로 아이즈에 피난해 와있는 분들도 제 레스토랑을 찾아와 주시고 있습니다. 베트남인 뿐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온 분들도 고향의 그리운 맛을 찾아 와주시고 또 서로 교류를 나누기도 하고 있습니다.


No.44  간노 에리(후쿠시마시 거주 여성 파라과이・아르헨티나 출신/2012년 10월 투고)

 나는 남편의 고향이라는 이유 외에 아름다운 자연에 이끌려 후쿠시마에 이주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이면 벚꽃이 피어 산에 옅은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 마치 히가야야마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여름에는 녹음이 지고 가을에는 청순 가련한 코스모스가 피며 논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그리고 고요한 하얀 겨울.
 나는 이런 후쿠시마가 좋다.
 그 가슴 아팠던 3월로부터 1년8개월.
 마을에는 사람들이, 웃는 얼굴이, 조금씩 되돌아왔다.
 며칠 전에는 아즈마공원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산책하던 중에 어느 엄마와 귀여운 형제를 만났다.
 형제는 아빠를 위해 도토리를 주웠다고 했다. 그 소중한 도토리 하나를 처음 만난 나에게 주는 것이다.
 형제의 웃는 얼굴은 은행잎의 노란 빛 속에서 부드럽게 빛났다.
 그 작은 도토리는 내 책상 위에서 그 따뜻한 풍경을 지금도 떠오르게 해주고 있다.

 http://worldvillage.sblo.jp/article/60059123.html


No.43  사사벤쟈마스씨 (후쿠시마시・태국출신/2012년 10월 취재)

 남편, 두명의 아들과 일본에서 생활한지 약 4년이 지났지만 이번처럼 큰 지진은 처음이었습니다. 지진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집에 있었고 마침 외출하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만약 가족 모두가 떨어져 있었다면 더욱 불안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진 후,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상담도 할 수 있어서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사능과 원전은 걱정이 되지만 뉴스를 봐도 일본어를 잘 몰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에 더욱 불안을 느낍니다. 쭉 일본어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모르는 일본어가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공부 외에도 평소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후쿠시마에서의 생활이 곤란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No.42  스콧・알가드씨(캐나다 거주/2012년 9월 투고)

 2001년부터 2004년 3년간, 후쿠시마현 국제교류협회에서 국제교류원으로 일한 후 캐나다에 돌아와 석사를 획득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박사과정 연구생으로 후쿠시마현에 대한 문화와 사회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012년 9월, 2년여 만에 제2의 고향인 후쿠시마에 돌아와 친구와 재회한 후 현내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부흥’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시찰하고 현민의 다양한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귀중한 경험으로 농장에서 후쿠시마의 맛있는 과일을 주셨습니다!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지만 후쿠시마현은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제 자신도, 앞으로 후쿠시마현 친구들과 과제를 다양하게 고안하면서 한발씩 앞으로 전진해 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http://worldvillage.sblo.jp/article/59082527.html


No.41  라운 소착(고오리야마시 거주 캄보디아출신 여성/2012년 9월 투고)

 미하루 허브가든에서.
 저는 아름다운 꽃이 있고 공가기 깨끗하며 음식 또한 건강에 좋고 맛있어서 이곳에 오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허브를 골라 허브티를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No.40  사토우 샤힛드씨(미나미소우마・파키스탄 출신/2012년 9월 취재)

 1987년부터 후쿠시마에서 살게 된지 25년, 일본국적을 받고 일본인으로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진 후 많은 사람들이 미나미소우마시에서 피난을 갔기 때문에 운영하는 영어스쿨 학생 수도 지진 전의 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전에는 거절했던 기업 영어연수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나미소우마시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이상 각오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해 미나미소우마시 부흥에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5월 캐나다에서 지역 의원을 하고 있는 조카가 미나미소우마시에서 수일 머물며 직접 우리들의 생활을 보고는 안심하고 돌아갔습니다. 또한 캐나다에서 친형도 방문할 계획입니다. 이 두 사람이 미나미소우마시의 정확한 모습을 캐나다에 전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No.39  사토 와라폰(다테시 거주 태국출신여성/2012년 8월 투고)


 저는 집 정원에서 허브를 키우고 있습니다.
 먹는 즐거움이 또 하나 늘어났습니다.



No.38  하라다 아야코(후쿠시마시 브라질출신 여성/2012년 7월 취재)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마침 기후에 가 있어서 집에는 고등학생 딸아이 혼자였습니다.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아 너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다행히도 브라질 대사관이 준비한 피난버스를 타서 약1주일 후에 시즈오카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평소처럼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도 잘 놀고 있고, 저도 일을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기서 지금처럼 생활할 생각입니다. 후쿠시마에서 산지 20년. 후쿠시마는 제 고향입니다. 여러분, 후쿠시마에는 정말 좋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꼭 후쿠시마를 방문해 주세요.


No.35  마크 스미스 (도미오카마치, 영국출신 남성/2012년 6월 취재)

 마크씨는 이번 지진으로 도미오카마치에서 아이즈와카마쓰시로 피난해왔습니다. 영어교사를 하고 있지만 라이프워크로서 전자음과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일렉트로니카 라이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장소는 현 내 지역보다는 동경과 홋카이도 등 대부분이 현 외로, 이번6월에는 아이즈와카마쓰시에서 1번, 삿포로시에서 3번의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마크씨는 “저는 현 외에서 라이브를 할 때, 후쿠시마현에서 왔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무대에 섭니다. 대지진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진 발생 전부터 쭉 해왔던 라이브 활동을 지진 후에도 변함없이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제가 제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후쿠시마의 부흥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3월에 열린 라이브가 YOUTUBE에 실려있습니다. 꼭 한번 봐주시길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VPuBq0e5qWU&feature=channel


No.34  핫토리 히데코(니혼마쓰시, 중국출신 여성/2012년 6월 취재)

 지진 후에 변한 것이 있다면 일이 줄어든 것입니다.
 저는 온천여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주1~2일 비정기적으로 일이 들어오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과 한국,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오는 외국인관광객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습니다.
 올해 5월부터 개호사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격을 따면 개호사 일을 하려고 합니다.
 또, 작년에 못했던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일도 시작하였습니다. 감자와 옥수수, 오이를 심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방사선 자체보다도 방사선을 걱정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 더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방사능은 되도록 신경을 안 쓰도록 하면서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생활해 가고 싶습니다.


No.33  서수연(후쿠시마시거주 한국출신여성/2012년 5월 투고)

 최근에 날씨가 무척 따뜻해져서 나는 산보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집 “사랑”이라고 하는 개가 있는데 같이 산보를 하기 때문이다.

 혼자 걸면서 산보를 하는 것은 참 따분한데 사랑이와 같이 산보를 하게 되었기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은 “사랑” 이라는말이다.
 그래서 우리집 개 이름을 비록 수켯이지만 사랑이라고 부쳐주었다.
 그 말처럼 보기만 해도 예쁘고 걸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No.32  호시 레니(후쿠시마시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2012년 5월 취재)

 지진 전부터도 가까이에 사는 인도네시아인끼리 때때로 제 집에 모여서 인도네시아 요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모인 인도네시아인들은 연수생이거나 간호사 후보생이거나 국제결혼을 하여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임은 지진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후쿠시마에 새로 온 사람들도 참가하면서 1달에 1번 정도 매회 수십 명이 모입니다.
 지난번에는 현 협회로부터 받은 방사능과 건강에 관한 세미나의 강연록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방사능에 관한 걱정은 많이 없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제가 후쿠시마에 20년 가까이 살고 있기도 하여 이런저런 상담을 하기 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No.31  창도안즌(후쿠시마시 거주 베트남출신 남성/2012년 4월 취재)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1주일 정도 단수가 이어져서 근처에 사는 가족들과 함께 매일 물을 길렀습니다. 이웃 중에는 물을 긷는 것이 어려운 연세가 드신 분이 많습니다.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모국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는데, 어머니는 울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가족들도 있고 직장도 있어서 바로 모국으로 피난을 갈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 몇 개월간은 역시 방사능이 신경 쓰였고 후쿠시마현 채소를 먹는 것도 주저하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지진 전의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후쿠시마의 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후쿠시마산 야채와 과일을 사서 먹고 있습니다.
 전국에 계신 여러분들도 후쿠시마현 물품을 구입해 주시고 후쿠야마시에 관광도 많이 와주시기 바랍니다.


No.30  가랄 아하매드 (후쿠시마시 거주, 이집트 출신/2012년 4월 투고)

 2012년4월28일에 촬영한 니혼마쓰시 갓센바의 수양벚나무 사진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벚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조명이 켜진 벚꽃도 아름다웠습니다.
 벚꽃이 1주일 밖에 피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No.29  이시다 세실리아(후쿠시마시 거주,브라질 출신/2012년 4월 투고)

 후쿠시마역 동쪽출구 앞 꽃시계 .

 후쿠시마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 계절별로 풍요로운 자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작년 대지진 이후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올해도 역 앞의 꽃시계는 봄의 시간을 시시각각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의 꽃놀이 기분도 더욱 무르익겠지요.



No.28  시로사카 아이(스카가와시 거주, 중국출신 여성/2012년 4월 취재)

 저에게는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둘 있습니다. 지진 후에는 최소한 주말만이라도 아이들을 방사능 양이 적은 아이즈나 다른 현으로 데리고 가서 마음껏 놀게 하자는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저도 알고 지내는 중국출신 엄마들과 함께 아이즈 방면으로 가족여행을 떠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일본 학교의 규범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중국어를 못한다,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가 어렵다 등등의 고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고민을 해결해보자!라는 생각에 “쓰바사”라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가까운 공민관에서 한 달에 2번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회원은 7~8가족 정도입니다. 엄마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이들로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No.27  모리아이 밧사다 (고오리야마시거주 태국출신 여성/2012년 4월 취재)

 일본에 온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이렇게 심하게 흔들린 지진은 처음이었습니다. “이걸로 끝이다. 이것도 숙명이다”라고 마음을 먹을 정도였습니다.
 원전사고에 관한 것은 일본인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비축해둔 식량과 물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간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모국으로 귀국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모처럼 직업을 찾은 것도 있고, 가까이에 사는 태국인들이 따뜻하게 말을 걸어준 덕분에 “난 혼자가 아니야”란 생각이 들어 여기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원전은 지금도 걱정이 됩니다. 가끔씩 뉴스가 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방사능은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그런 것을 신경을 쓰다 보면 오히려 더 힘들어 질 것 같아 제 스스로 몸과 마음의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No.26  마호니 숀(후쿠시마시거주 캐나다출신 남성/2012년 3월 취재)

 원전사고에 관해서는 아내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긴 시간 진지하게 생각하여, 결국 정원과 건물의 제염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만 미나미아이즈의 할아버지 댁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방사능 레벨이나 집의 제염 등 아직도 머리 아픈 일들뿐입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사고가 난 원전 이름이 “후쿠시마”인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참사에 후쿠시마현 전체가 말려들었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저희들은 친구와 가족이 있는 후쿠시마가 정말 좋습니다. 집도 일도 중요하고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저희들은 음식의 방사능 측정의 개선과 철저한 제염작업이라는 노력에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그것이 정권에 의해 바뀌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No.25  산페이 스미에(나미에초거주 중국출신/2012년 3월 취재)

 3월12일 밤중에 초사무소로부터 츠지마방면으로 피난하라는 무선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때는 2~3일 정도면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아침에 급한대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가족모두가 피난했습니다. 그 후, 피난소를 전전하다 8월부터 후쿠시마시내의 가설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둘 있지만, 마음의 준비가 채 안된 상태에서 갑작스런 피난과 익숙치 않은 피난소와 가설주택에서의 생활, 새로운 학교 등으로 아이 나름대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미에에는 5년전에 새로 지은 집이 있고, 론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해봤자 소용없을 겁니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No.24  가랄 아하마드(후쿠시마시거주 이집트출신남성)/2012년 2월 취재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먼저 후쿠시마에 가 있었던 아내에게 바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아내는 후쿠시마를 위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4월부터 후쿠시마시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원전사고에 관한 것만 보도가 되어 나쁜 부분에 관한 정보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취미인 사진을 통해 현내의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인터넷상에 사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눈을 보았습니다. 저는 하얀 꽃잎 같은 것이 떨어지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감동하였습니다. 이 눈 사진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후쿠시마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http://bit.ly/A9e3jX


No.23  나가타 리세(이와키시거주 통가출신여성/2012년 2월 취재)

 지진발생 후 한달 간은 혼자서 생활하시는 이웃 노인분들을 돌보거나 다른 현에 사는 통가인들의 협력을 얻어 피난소에서 밥을 지어 제공하기도 하며 매일 바쁘게 지냈습니다. 일 때문에 혼자 통가에 부임해 있는 남편으로부터 빨리 피난하라는 연락이 몇번이나 왔었지만 신세를 지고 있는 이웃분들, 영어회화 교실의 학생들, 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모두를 두고 저만 통가로 피난을 간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5월부터 영어회화서클도 다시 시작하여 지금은 완전히 지진 전의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후쿠시마에서 산지 35년이 되었습니다. 후쿠시마는 제 고향입니다. 즐거운 일들을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활해가고자 합니다.


No.22  로페스 켄(후쿠시마시 필리핀국적 남성/2012년 1월 취재)

 저에게는 아내와 1살,5살,7살 된 자녀가 있습니다. 지진발생 당시에는 물도 가스도 중단되었고 방사능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기 때문에 16일에는 동경으로 피난하였고, 그 후에 필리핀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일 때문에 아이들 3명을 필리핀 집에 맡기고 아내와 저만 5월에 후쿠시마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스카이프 등으로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같이 있지 못해서 정말 적적합니다. 아이들 비자문제도 있기 때문에 3월에는 아이들을 한번 불러들일 예정이지만, 방사능이 걱정됩니다. 밖에서 놀게 할 수 있을지, 먹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불러온다고 해도 얼마나 있을 수 있을지 너무나 불안합니다.


No.21  셔 경미(이와키시 미국국적 여성/2012년 1월 취재)

 지진으로 집 전체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얼마간 피난소와 친구 집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남편은 당시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바로 돌아와 가족 모두가 모일 수 있었던 것는 18일이었습니다. 바로 단독주택을 빌려서 살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남편은 가고시마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저희들도 이번 여름에는 가고시마로 이사를 갈 예정입니다. 지진이 발생한지 벌써 10개월. 매일같이 “복구, 부흥” “방사능” “제염”과 같은 말이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감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요즘에는 솔직히 말해서 지칩니다. 제 마음의 “복구, 부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No.20  간노 마사미(나혼마쓰시 필리핀출신 여성/2011년 12월 취재)

 지진 직후에는 나미에초로부터 많은 분들이 피난을 와서 이웃과 함께 피난소에서 자원봉사를 하였습니다. 지진과 방사선은 정말 무서웠지만, 이번 지진으로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저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지금 아이들 밥은 어른들 것과는 따로 다른 현에서 생산한 쌀로 만들고 있어서 매번 2개의 밥솥으로 밥을 짓고 있습니다.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과 싸우고 있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있기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다양한 행사나 이벤트에 참여하여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No.19  짱 췬(후쿠시마시 중국출신 남성/2011년 12월 취재)

 시내에서 중국요리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지진 직후에는 개장하고 1년도 안된 가게 안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정전과 단수로 영업도 할 수 없게 되어 앞으로 어떻게하면 좋을지 정말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자주 찾아주시던 손님들이 서서히 돌아와 지금은 이럭저럭 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해 온 것이 손님들과의 신뢰관계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크나큰 재산입니다. 지진의 영향으로 관광업은 큰 타격을 받았고, 저처럼 요리를 만드는 여관의 주방장들 가운데도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부흥대책을 세워주기를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No.18  친타카 쿠라마(고리야마시 스리랑카출신 남성/2011년 11월 취재)

 이번 지진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중학교3학년인 아들과 아내는 바로 나고야에 있는 친구 집으로 갔다가 스리랑카로 귀국하였습니다. 귀국 후 아들은 미국의 고등학교로 가, 유학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전문가의 두뇌와 지혜를 모아 방사능제거 기술을 하루 빨리 개발했으면 합니다. 특히 장래를 짊어질 어린아이들이 걱정입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일본대학 공학부에서 유학을 한 이래 쭉 후쿠시마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福島)는 정말 복(福)의 섬(島)입니다. 제가 살 곳은 후쿠시마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내서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No.17  주홍 은희(후쿠시마시 중국출신 남성/2011년 11월 취재)

 지진이 발생한 직후, 5살인 아들과 부인과 함께 셋이서 중국으로 일시귀국을 하였고 아들은 아직도 중국의 부모님께 맡긴 채 입니다. 생활을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제 일의 내용은 바뀌었습니다. 아시아로부터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종래의 방법만으로는 유학생이 찾아 오는 것을 기대할 수 없기에 다양한 특전을 부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어린이들에게 미칠 방사능의 영향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중국으로 피난을 시킨 아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장래의 생활설계를.


No.16  최유나(후쿠시마시 거주 한국출신 여성/2011년 10월 취재)

 저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지진이 발생한 당일에는 같은 한국인 친구와 함께 피난소에서 하루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한국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의 사고소식 알리는 전화 를 받고, 그 친구와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후쿠시마 공항으로 가서 다행이도 14일에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대학 수업이 시작되어 저는 제 자신의 눈으로 후쿠시마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이란 생각에 5월8일에 후쿠시마로 돌아왔는데, 의외로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언제든지 피난할 수 있도록 항상 여권을 들고 다니고 방사선 걱정에 마스크를 하고 다녔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 유학을 하게 되었을 때 일본에서.


No.15  오지마 에우리파 아파레시다(후쿠시마시 거주 브라질출신 여성/2011년 10월 취재)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모토미야시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쿠시마시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11시를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있어서 15일에 남편과 함께 브라질대사관이 준비해준 버스를 타고 동경으로 가 브라질에 일시귀국 하였습니다. 그 후 후쿠시마에 남아있던 브라질인 친구와 1주일에 한번 정도 후쿠시마의 상황을 듣다가 이제 괜찮을거란 생각이 들어 6월6일에 돌아왔습니다. 방사선은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지진에 대해서는 민감해져서 만일에 대비해 인스턴트 미소라면 등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현관 앞에 놓아 두었습니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경험하였고 그것을 견뎌냈습니다.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강한 신념과 희망으로 지금의 고난도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No.14  앤드류 채프만 씨(아이즈와카마쓰시 거주 미국출신 남성/2011년 9월 취재)

 저는 5월부터 아이즈와카마쓰시 국제교류협회에서 국제교류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마침 아이즈와카마쓰시 국제교류협회의 면접을 위해 대만에서 나리타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저는 2년 전에 관광으로 아이즈에 온 적이 있었는데 지진이 발생한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는 방사선의 수치도 낮고 직접적인 지진피해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뜬소문에 의한 피해로 관광객수 특히 외국인 관광객수가 격감하였고, 농작물이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든 시기이기에 아이즈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지원하고 부흥에 힘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No.13  다카하시 리리아나 씨(소마시 거주 멕시코 출신여성/2011년 9월 취재)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저는 결혼식 준비를 위해 멕시코에 귀국해 있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시댁 집은 쓰나미에 휩쓸려갔고, 시댁이 경영하고 있는 유치원은 피난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멕시코에 계신 부모님은 물자부족으로 힘든 시기에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반대하셨습니다. 결국 한달 뒤에야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방사선의 영향을 매우 걱정하셨지만, 제가 남편과 함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유치원 일을 돕고 있습니다. 이어지고 있는 많은 이벤트와 원조는 유치원 아이들의 마음의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집을 잃고 그 가운데는 가족을 잃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예전의 미소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이곳에 돌아온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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